우리집, 땅콩집과 땅콩 마을을 소개합니다.
제가 일명 땅콩집으로 이사 온 게 2011년 11월 이니까 이제 1년하고도 6개월 정도 되었군요.
제가 원래 새로운 것을 접하고 채 1년도 되지 않아 사용기 같은 것을 쓰는 체질이 아니라서
1년을 훌쩍 넘겨 살아보고 땅콩집 사용기를 남겨 봅니다.
<이집의 안주인 엔젤리너스가 앉아 있군요>
일명 땅콩집은 2011년, 아는 사람들 사이에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었는데요,
건축가라고 스스로 칭하는 이현욱씨가 자기가 살 집을 직접 설계해서 지었다는 내용의 "두 남자의 집짓기"라는 책을 내고 MBC 스페셜과 같은 공중파 방송에 방영되기도 하면서 유명세를 탄 서민형 단독주택입니다.
이 양반 요즘엔 삼성카드 광고도 나오더군요.
<경험하지 않은 더 많은 사람들에겐 땅콩집 이현욱과 실용주의를 연결한 마케팅은 긍정적으로 보이겠죠>
이름이 땅콩집인 이유는 땅콩껍질 안에는 콩이 두알이 들어 있는것 처럼 한필지에 집을 두 채를 짓는다고 그렇다고 하네요.
선택의 동기
제가 원래는 일산쪽 아파트에 살았고 회사도 자가용으로 10분이면 갈 수 있는 상암동이었는데,
지금 땅콩집을 짓고 살고 있는 곳은 동탄 신도시입니다.
당연히 출퇴근 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어서 회사는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일거리를 찾아 이곳 저곳 돌아 다니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편안하게 출퇴근하는 것은 물건너 갔다는 것이고 직장을 바꾸는 그 이상의 생활의 변화를 도전했다는 것이죠.
그런데도 땅콩집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대표 주거 형태가 아파트인데요. 저도 아파트도 살아보고 연립도 살아 보고 했지만,
웬지 이사갈 필요 없는 내 집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더군요. 물론 전세를 살았으니 당연하기도 하지만,
내 집마련을 한다고 해도 그 느낌은 쉽게 바뀔것 같지 않았습니다.
웬지 틀에 박힌 시스템의 부품과도 같은 느낌적 생활, 그 것이 아파트 베란다에서 내다 보이는 일상의 풍경이었습니다.
그리고 최대의 단점인 층간소음과의 전쟁...
아이들이 3,4세가 되면서 퇴근하고 집에 오면 들리는 소리는 아이들 엄마의 "뛰.지.마!"라고 외치는 소리 뿐이 었습니다.
어느때는 우리 아이들이 자고 있는데 윗집의 소음때문에 신경이 쓰이는 던중,
아래 집에서 아이들 좀 그만 뛰게 하라는 민원이 들어 오기도 했으니,
이건 윗집 아랫집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중 지금은 활동이 뜸하지만 자주 찾던 욱자님의 블로그에 단독주택 입주와 관련한 게시물을 보면서,
"나도 단독에 살고 싶다." 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내 나이 50세 생일은 반드시 내가 설계를 주문한 집에서 맞겠다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크면서 50세의 계획은 너무 늦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차라리 나이가 들면 그때는 오히려 아파트가 편하겠지만, 아이들이 자랄때는 단독에 사는것이 맞다고 생각하기 시작할 무렵 자바지기님의 블로그에 올라온 "두 남자의 집짓기"라는 책의 독후감을 게시물을 보고 바로 책을 구매해서 읽었죠.
이 책을 다 읽고 "바로 이거야!" 라고 외치며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인터넷을 뒤졌더니 역시나 네이버 카페가 있고, 동탄에 소규모 단지를 계획으로 모집 중이었습니다.
아내와 빠른 의사 결정에 들어 갔습니다.
당시 그래도 나름 안정적인 대기업 차장 직급 자리도 버리고 프리랜서로 전향하는 모험까지 한꺼번에 일사천리로 진행 되었죠.
물론 그 무렵 회사조직의 무능함과 무지함을 가슴 깊이 느끼고 10년째 다니던 회사에 애정이라고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아서 이직이 수순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모든것은 계획대로 잘 진행 되어서 집을 짓고 그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내부는 이렇습니다.
내부는 1층이 거실과 주방 그리고 화장실로, 2층은 침실만 3개, 3층은 다락으로 TV보고 쉬는 공간으로 쓰고 있습니다. PIT라고 지하층이 더 있는데, 높이가 150Cm 밖에 되지 않아 허리를 굽히고 다녀야 해서 창고용도로 쓰고 있지요.
뭐 어쨌든 말하자면 4층집인 셈이네요.
입체 평면도로 본 모습은 이렇습니다.
<1층>
<2층>
<3층, 다락>
실제이 모습을 보여 드릴께요. 살림하는 집이니 큰 기대는 하지 말아 주십시요.
먼저 거실 입니다. 가족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공간이지요. 크기는 25평 아파트 거실 크기 정도 입니다. 다소 좁은 느낌이 있는 것이 아쉽지요. 그래도 문만 열면 바로 밖으로 나갈 수 있어서 좁은 느낌이 상쇄 될 수 있기는 합니다만, 애초에 거실을 조금 더 크게 설계 했어야 한다는 생각은 동네 주민 모두의 공통적인 생각이더군요.
여기는 주방입니다. 집사람이 제살림 찍는다고 뭐라뭐라해서 일부분만 겨우 찍었네요.
처음 이사와서 기본으로 되어 있는 주방이 하자가 너무 심하고 생활반경이라고는 눈꼽만큼도 고려되지 않아서 투쟁 끝에 금전보상받고 입주 후에 다시 개인적으로 공사한 주방입니다. 주방공사 라는것이 싱크대 아래 쪽에는 바닥 마감을 안 해놓으면 조금만 자리를 옮겨서 설치하려고 해도 바닥공사까지 들어 가야 하는 대 공사가 수반되는데 여지없이 그렇게 해 놓았더군요.
한 겨울에 아이들 피신시키고 저는 돈도 못 벌러 가고 일일이 공사업체 선정해서 야간공사 했던 기억이 나네요.
이제 2층으로 올라가 볼까요?
이 집은 계단이 많아요. 많아도 너~~~무 많아요. 몸이 피곤하고 지칠때는 정말 계단이 싫어 집니다.
이제 2층에 올라 오면 방문 3개와 화장실문이 보이네요. 나름 복도라고 해야 하나요?
제일 먼저 나타나는건 파란방이라고 부르는 제 작업실이에요. 원래는 아들녀석 방으로 꾸몄는데, 아직 어려서 혼자서는 잘 수 없어서 일단은 제가 쓰고 있습니다. 책상 옆에 최근에 새로산 통기타가 보이는군요.
그 다음은 핑크방으로 부르는 아이들 방이에요. 딸아이를 위한 방으로 꾸몄지만 지금은 아이들 둘이 모두 여기서 잠자고 때로는 둘째가 칭얼대며 깨면 아내도 같이 자기도 하죠. 커튼까지 핑크로 깔마춤해서 처음엔 좀 쎈거 아닌가 했는데, 의외로 어중간한 것 보다 훨씬 좋네요.
2층에 제일 큰방이 안방입니다. 이사와서 새로 마춘 자작나무 침대와 누나네서 가져온 소형 테이블 그 뒤로 보이는 문은 드레스 룸입니다. 그 안쪽은 차마 사진을 찍을 준비가 안되서....
이 집의 특징이 계단으로 살림살이가 올라 오는게 한계가 있어서 이사하는 날 사다리 차로 2층 창문을 통해서 짐을 옮겨야 합니다. 그래서 살고 있는 도중 가구를 바꾸는게 거의 불가능에 가깝죠.
저희는 공방에 가서 아예 조립식으로 침대를 주문했습니다. 이 집에 이사와서는 뭐든지 설계하고 주문하는 식으로 바뀌는 것 같아요.
이제 다락으로 올라가 볼까요?
이 집의 특징 중에 하나가 계단 사이 사이에 작은 창들이 나 있어서 이렇게 소품들을 진열해 두면 빛을 받아서 더 예쁘게 보인다는 겁니다.
연주자 소품은 신혼때 구입한 건데, 제가 무척 좋아 하는 겁니다.
언젠가는 저 소품들 처럼 연주 할 수 있는 날이 오겠죠? 우리가족 앙상블....
자~ 또 한번 계단을 올라 가면 다락이 나옵니다.
다락은 3개층 중에 단위 면적이 가장 넓어서 누구든 이 집에 처음 방문하는 사람은 다락에 매료 되곤 하지요.
TV와 오디오, 홈시어터가 있는데, 사용 횟수는 거의 없습니다.
TV를 보기 위해 일부러 다락 까지 올라 오느것은 TV 광이 아니면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드라마, 예능은 물론이고 뉴스도 못보고 넘어가는 날이 많습니다. 세상 돌아 가는 것은 인터넷 아니면 몰라서 정말 바쁜날 무슨 사건 사고가 터지면 혼자만 모르는 경우가 많죠.
그래도 자연스레 TV 안보고 살고 있어서 예전부터 하려고 했던 인생 습관 하나를 고치게 되었네요.
다락에는 제가 서른이 넘어서 처음 배우기 시작한 디지털 피아노와 아이들 장남감 피아노가 있어요.
쉬는 날 다락에서 피아노 레퍼토리를 한번 쭈~욱 치면 저는 스트레스 해소가 가장 잘 되더군요.
가끔은 아이들 즐겨보는 만화영화 주제곡을 쳐주면 아이들이 춤추고 노래하기도 하구요.
천정에도 창문이 있어서 사람들은 부러워 하는데, 사용해본 결론은 개~ 멋입니다.
겨울엔 춥고 여름엔 뜨거워서 커튼으로 덮어야만 합니다.
비오느날 비내리는 하늘을 상상한다면 보름달이 뜬 밤에 달을 핸드폰 카메라로 찍어 보세요. 딱 그 느낌의 결과치 입니다.
물론 이건 건축가 이현욱이 강력추천한 겁니다.
다락 끝 부분에 책장은 저와 아내가 직접 손수 한땀 한땀 짠겁니다.
이 집의 설계자로 알려져 있는 이현욱의 집에도 저렇게 되어 있는데, 저걸 추가하면 몇백을 더 내야 한다고 해서, 제가 직접 목공소가서 나무 사다가 자르고 해서 직접 만들었더니 10만원 조금 넘거 들더군요. 물론 나무가 비싼건 아니라서 단순 비교는 안되지만 좀 어이가 없는 대목인건 사실입니다.
이 집에 이사와서 웬만한 초급 목수 정도의 스킬은 익힌것 같아서 노후에 체력만 된다면 용돈정도는 벌겠더군요.
이 집에 꽃은 마당과 마을 문화
사실 이집의 내부 구조와 인테리어 마감 수준은 솔직히 별.로. 입니다.
구조 자체를 큰 고민없이 대충 설계한데다가 마감재 마저도 어디서 구하기도 힘든 싸구려만 골라서 사용해놔서 볼품도 없습니다.
그저 큰 불편없이 살고 있는 정도 이지요.
하지만, 애초에 이집의 장점은 마당과 마을 문화입니다.
봄이면 꽃이 피고, 여름이면 푸르른, 겨울이면 눈덮히는 마당이 있는 집이 있는 것은 행복 요소의 하나 입니다.
마당이 있으면 아이들에게는 선택권이 하나 더 생깁니다.
집안에서 장난감이나 그림그리기를 하고 놀 수 있는 기본권에서 마당으로 나가서 놀 수 있는 선택권이 하나 더 생긴다는 말입니다.
요즘 새로지은 좋은 아파트단지는 자동차를 무조건 지하로 들어가게해서 단지내에는 자동차가 다니지 않아서 좋은 환경을 구성해 놓은 곳도 많습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라는 장애물의 차이는 펜티엄에 Win-XP 설치한 컴퓨터의 부팅의 답답함과 최신 맥북 프로를 쓰는 것 만큼의 차이가 날겁니다.
아이들에게는 웹 접근성 보다 마당의 접근성이 더 중요하죠.
제가 자랄 시절에는 놀아준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지만, 요즘 아이들에게는 당연한 요구와 권리 처럼 미디어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부모가 아이들과 놀아줘야 하는 이유는 아이가 혼자서 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보통 좋은 장남감을 안겨 주면 잠시나마 혼자 놀기도 합니다. 아이는 마당에서 좋은 장남감 같은 것을 가끔씩 찾아 내기도 합니다. 아이는 그 만큼 덜 놀아 줘도 됩니다.
<마당에서 놀고 있는 딸 솔라리스와 아들 율리시스>
그렇다고 혼자서 하루종일 즐겁게 마당에서 놀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이 마당에서 노는 시간은 생각 보다 짧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저는 마당을 크게 만들 필요가 없다고도 생각합니다.
우리 집은 건물보다 마당 면적이 더 크거든요. 미친...
그래서 필요한 것이 마을 문화 입니다.
아이는 혼자 노는 것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부모가 놀아 주는 겁니다.
솔직히 부모가 놀아 주는 것이 재미있을까요?서로 공감하면서 즐겁게 노는것이 아니라 아이를 위해 놀아 주는 건데요.
하지만, 아이들을 모아 놓으면 부모가 놀아 주는게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
이 곳에 이사온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또래 아이들과 놀수 있는 공간을 찾기 위해서 입니다.
마을에 38가구가 모여 살다 보니 또래 아이를 찾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38가구 모두와 친하게 지낼 필요도 없습니다.
아이들은 날씨가 풀리면서 자연스레 자기와 성향이 맞는 아이들과 패를 꾸려 놀기 시작합니다.
한 겨울 매서운 추위가 아니면 아이들은 마을 전체를 돌아 다니면서 놀아 재낍니다.
가끔 다치기도 하고 다투기도하고 따돌림을 당해보기도하고
형들, 누나들에게 보호 받아 보기도 하고 괴롭힘 당하기도 하는 아주 당연히 자연스러운 성장을 느끼게 됩니다.
제가 이곳에 사는 이유가 아이들 만을 위한 특혜를 위해 부모의 행복을 포기하는 그런 희생적 어리석음을 자랑질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저녁이면 카레를 했다고 가져다 주는 이웃, 밤이면 골뱅이 무쳤으니까 한잔 하러 건너 오라는 이웃, 주말이면 바베큐 불 피운김에 같이 구워 먹자고 고기만 가져오라는 이웃, 그런 심부름을 하러 다니는 동네 꼬마들...
퇴근이 기다려 지는 이유 중에 마을이라는 이유가 생겼습니다.
요즘 복지 좋은 회사가 인기가 많은것 같은데요.
저는 회사에서 제공하는 복지 보다 집에 빨리 갈 수 있는 프리랜서가 훨씬 좋습니다.
생일날 친구들 불러서 파티하는건 아이들만의 특권으로 두는 이 이상한 나라에서 아빠 생일날 이웃집들을 초대해서 파티를 하는것은 이미 관습처럼 된 동네에서 사는 것은 살면서 경험하기 힘든일이죠.
가끔씩 주말 호프데이는 아주 일상이구요.
저는 집에서 일할때가 많아요.
저는 갑종근로소득세를 내는 근로자가 아닙니다. 다시 말해 프리랜서라는 뜻이죠.
주로 강의와 집필로 생계를 유지하는 직업이다 보니, 집에서 일을 하는 시간이 많은 편입니다.
서울에 사무실이 있지만 강의 일정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왔다 갔다 시간이며 교통비며 부담이 많아서 일부러 일정을 잡지 않는 이상 잘 안나갑니다.
주변 환경이 집중을 떨어 트릴때는 동네 도서관을 이용하기도 합니다만, 어쨌든 집에서 일할때가 남들보다 많습니다.
빛이 좋은 오전에는 거실에서 오후에 해가 넘어 가기 시작하면 마당 데크에서 일하기도 하지요.
웬지 외국에서만 가능할것 같은 생활, 그래서 꼭 해보고 싶었던 생활이 바로 마당 데크에서 일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조금 불편하지만 그걸 감수하고라도 일부러 마당 데크에서 일하기도 합니다. 누릴건 누려봐야 하니까요.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돌아와 뛰어 놀기 시작하는 늦은 오후 부터는 2층 작업실로 가서 일을 합니다.
제 작업실에서 내려다 보는 전경이 아직도 싱그러운 꽃들 때문에 아주 아름답군요.
이게 다 개 고생 한 결과 입니다.
마당이 처음 부터 이렇게 예쁘지도 아이들이 뛰어 놀 수 있지도 가든 파티를 할 만큼 좋지도 않았습니다.
이사하고 1년간 아내와 저는 노예처럼 일했습니다. 물론 마을 주민 대부분이 그랬습니다.
위의 사진은 두번째 마당 평탄화 작업후 세번째 평탄화 작업 중인 사진이에요.
마당이라고 해놓은 꼬라지가 '내가 이걸 보려고 이사를 했나?' 싶어서 아내와 저는 마당에 잔디를 캐내고 흙을 실어 날라서 평탄화하고 잔디를 심고 하는 작업을 주말 마다 했습니다. 디딤돌도 일일이 구해서 심고 수도 계량기도 옆집과 분리하고...
보도블럭을 구해다가 주차장도 만들고 담장도 만들고 마당데크도 보수하고 집수정도 땅을 파서 묻고...
정말이지 일용직 건설 노동자와 목수가 할 수 있는 일의 대부분을 경험하고 각종 공구나 건재를 어디서 얼마에 구하고 그걸 뭐라고 부르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한 여름 폭우에는 주변 공사장 구간에서 넘어 오는 물이 많은데 이걸 제대로 물길을 만들어 놓지 않아서 물난리 직전 신새벽에 삽을 들고 물길 만드는 일을 3~4번은 한것 같네요.
이렇게 1년을 개고생을 하고 나서야 그나마 만족스런 집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결론적으로 힘들게 내린 땅콩집 이주 결정은 제 인생에 가장 좋은 결정이 되었습니다.
주거형식만 바꾸는게 아니고 주거지와 직장, 그리고 근로 형태 까지 단번에 바꾸는 것이 누구에겐들 모험이 아니었겠습니까?
며칠 밤을 고민하며 잠 못이루며 결정한 선택이 결과적으로는 잘되었습니다.
아파트에서 살때보다 아이들도 저도 아내도 행복하고 삶의 질이 윤택해졌습니다.
이웃과 함께 사는 마을이 좋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가장 힘들게 했던 부분이 있었으니 바로 땅콩집 그 자체 였습니다.
보통 건설에는 3개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시행사, 시공사, 설계/감리.
건축 설계만 하는 사람을 어째서 건축가라는 호칭을 쓰는지는 모르겠지만(사업가, 은행가 같은 모호한 호칭 아닐지...),
건축가 이현욱은 여기서 설계사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있었고,
본래는 시행사가 해야 하는 분양인 모집과 프로젝트 기획까지 한 셈입니다.
하지만, 본인이 나중에 털어 놓기로는 설계와 감리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기획만 한것이죠.
설계 기간 동안에도 요구사항을 내놓으면 마치 자신이 처리하는 것처럼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길래,
제가 직접 설계도를 그려서 보여주면서 안되는 이유를 추궁하기도 했습니다.
워낙 유명세를 탄 양반이라 주변 사람들이 오히려 저를 불손한 사람으로 대하는 분위기가 클 정도 였습니다.
(그 놈의 빠 문화.... 대한민국이 이상한 나라가 된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군요.)
지금도 저는 제 집의 구조를 동일한 면적에서 더 좋게 만들 아이디어가 많은데 적용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조금만 더 신경 썼더라면 훨씬 더 넓고 편리한 공간을 만들었을 것을...
엔지니어 마인드라고 는 찾아 볼 수 없는 사람이 어떻게 건축가라는 호칭을 자청하는지 모를일입니다.
건축물의 품질은 철저히 일용 건축 노동자의 손에 좌우 합니다. 적어도 우리나라는 그렇습니다.
그 분들이 전날 술을 많이 마셨으면 그 구간은 위험하고, 운좋게 기술도 좋고 꼼꼼한 분이 작업하면
그 구간은 정말 예술이죠. 그래서 이것을 시스템화 한것이 설계, 시행, 시공, 감리 입니다.
이것을 건축주가 일일이 개입해서 확인하고 바로 잡지 않으면 저 처럼 운좋으면 1년은 개고생 해야 할겁니다.
이현욱 같은 사람을 만나면 말이죠.
개발자로 일하면서도 이런 경험이 많죠.
어디서 그런 정치력과 인맥을 동원해서 명성을 얻었는지 모르겠지만,
껍질뿐인 기획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그런 어설픈 기획자들 말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정치력과 명성만이 상식이고 무기이고 실존인 셈입니다.
(솔직히 스티브잡스 때문에 유명해진 그놈의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교차점에서 일어날 가장 큰 부작용 아닐지...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교차점이 교착점 될라...)
제가 가진 땅콩집의 메이커는 최악이었고, 하드웨어는 솔직히 별.로.입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는 무척 만족 스럽습니다.
좋은 메이커가 만든 고급 하드웨어인 아파트의 소프트웨어 보다 말이죠.
그래서 결론은 하드웨어 보다 소프트웨어가 중요하다!
좀 뜬금없군요.
뜬금 없는 결론 하나 더 내자면
제대로 할 수 없으면 나서지 마라! 그것은 곧 민폐가 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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